가치의 단위를 찾아서: 시간에너지와 원화의 구매력
앞 글에서 우리는 가치의 단위를 화폐가 아닌 시간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정말 그 길밖에 없을까? 화폐에서 벗어난 단위를 찾는 다른 길을 하나 더 걸어 보자. 이번에 택한 기준은 에너지다.
에너지를 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이 하루를 살아내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시대가 변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조선시대 사람도 지금의 우리도 하루에 2,000킬로칼로리 남짓을 쓴다. 화폐처럼 발행량을 늘려 희석할 수도 없다. 변하지 않는 기준, 즉 북극성의 조건에 부합한다.
사람은 하루에 얼마의 에너지를 쓰는가
한 사람이 하루에 소모하는 총 에너지를 TEE(Total Energy Expenditure, 총 에너지 소비량)라 한다. TEE는 가만히 있어도 쓰이는 기초대사량, 몸을 움직이는 데 쓰는 신체활동대사량, 먹은 것을 소화하는 데 쓰는 식사성 발열효과의 합이다.
듀크대 허먼 폰처 교수 연구팀은 전 세계 6,400여 명을 대상으로 생애 주기별 에너지 소비량을 실제로 측정해 발표했다. 나이와 성별에 따라 하루에 얼마를 쓰는지를 실측한 최초의 연구다.

우리에게 익숙한 킬로칼로리로 바꾸면 다음과 같다. 이 값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하자. 사람의 몸은 그렇게 빨리 바뀌지 않는다.

인구가 바뀌면 필요한 에너지도 바뀐다
나이별로 쓰는 에너지가 다르다면, 나라 전체가 쓰는 에너지는 인구 구성에 따라 달라진다. 통계청 통계지리정보서비스(SGIS)에서 2000년부터의 성별·연령별 인구를 받아 앞의 TEE와 곱하면, 국민 전체가 하루에 소모하는 에너지의 연도별 변화를 구할 수 있다.


이를 해당 연도의 인구로 나누면 국민 1인당 평균 TEE가 나온다. 값은 하루 2,350~2,400킬로칼로리 수준이고, 해가 갈수록 조금씩 늘어난다. 사람이 더 많이 먹어서가 아니라, 에너지를 많이 쓰는 연령대의 비중이 커졌기 때문이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만든 결과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돈
이제 반대편을 구할 차례다. 그만큼의 에너지를 얻으려면 돈이 얼마나 필요한가?
보건복지부는 2000년부터 최저생계비를 계측해 발표해 왔다. 2015년부터는 기준이 기준 중위소득으로 바뀌었는데, 두 통계가 겹치는 해를 보면 최저생계비는 중위소득에 약 0.395를 곱한 값이었다. 이 비율로 2016년 이후의 최저생계비를 이어 추정했다.
| 연도 | 1인 | 2인 | 3인 | 4인 | 5인 | 6인 |
|---|---|---|---|---|---|---|
| 2000 | 324,011 | 536,614 | 738,076 | 928,398 | 1,055,588 | 1,191,134 |
| 2001 | 333,731 | 552,712 | 760,218 | 956,250 | 1,087,256 | 1,226,868 |
| 2002 | 345,412 | 572,058 | 786,827 | 989,719 | 1,125,311 | 1,269,809 |
| 2003 | 355,774 | 589,219 | 810,431 | 1,019,411 | 1,159,070 | 1,307,904 |
| 2004 | 368,226 | 609,842 | 838,797 | 1,055,090 | 1,199,637 | 1,353,680 |
| 2005 | 401,466 | 668,504 | 907,929 | 1,136,332 | 1,302,918 | 1,477,800 |
| 2006 | 418,309 | 700,489 | 939,314 | 1,170,422 | 1,353,242 | 1,542,382 |
| 2007 | 435,921 | 734,412 | 972,866 | 1,205,535 | 1,405,412 | 1,609,630 |
| 2008 | 463,047 | 784,319 | 1,026,603 | 1,265,848 | 1,487,878 | 1,712,186 |
| 2009 | 490,845 | 835,763 | 1,081,186 | 1,326,609 | 1,572,031 | 1,817,454 |
| 2010 | 504,344 | 858,747 | 1,110,919 | 1,363,091 | 1,615,263 | 1,867,435 |
| 2011 | 532,583 | 906,830 | 1,173,121 | 1,439,413 | 1,705,704 | 1,971,995 |
| 2012 | 553,354 | 942,197 | 1,218,873 | 1,495,550 | 1,772,227 | 2,048,904 |
| 2013 | 572,168 | 974,231 | 1,260,315 | 1,546,399 | 1,832,482 | 2,118,566 |
| 2014 | 603,403 | 1,027,417 | 1,329,118 | 1,630,820 | 1,932,522 | 2,234,223 |
| 2015 | 617,281 | 1,051,048 | 1,359,688 | 1,668,329 | 1,976,970 | 2,285,610 |
| 2016 | 641,972 | 1,093,090 | 1,414,076 | 1,735,062 | 2,056,048 | 2,377,034 |
| 2017 | 653,075 | 1,111,994 | 1,438,531 | 1,765,068 | 2,091,606 | 2,418,143 |
| 2018 | 660,650 | 1,124,893 | 1,455,218 | 1,785,543 | 2,115,869 | 2,446,194 |
| 2019 | 674,441 | 1,148,374 | 1,485,594 | 1,822,815 | 2,160,036 | 2,497,256 |
| 2020 | 694,269 | 1,182,136 | 1,529,271 | 1,876,406 | 2,223,541 | 2,570,675 |
| 2021 | 722,178 | 1,220,105 | 1,574,065 | 1,926,629 | 2,274,747 | 2,618,970 |
| 2022 | 768,397 | 1,288,065 | 1,657,333 | 2,023,346 | 2,380,295 | 2,728,967 |
| 2023 | 820,767 | 1,365,181 | 1,751,752 | 2,133,381 | 2,500,622 | 2,855,052 |
| 2024 | 880,236 | 1,454,631 | 1,862,290 | 2,263,316 | 2,644,815 | 3,009,256 |
| 2025 | 944,845 | 1,553,400 | 1,985,014 | 2,408,620 | 2,807,736 | 3,185,598 |
다만 최저생계비는 가구원 수에 따라 다르다. 2인 가구의 생계비는 1인 가구의 두 배가 아니다. 함께 살면 방도 냉장고도 나눠 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균 가족의 최저생계비를 구하려면 평균 가구원 수가 필요하다. 가구원 수는 계속 줄어, 2000년 3.13명이던 것이 2025년에는 2.18명이다.

2인 가구와 3인 가구의 최저생계비 사이를 선형으로 내삽하면 평균 가족의 최저생계비가 나온다. 이 값은 한 가족이 한 달을 버티기 위해 최소한으로 벌어야 하는 현금흐름이며, 먹는 것뿐 아니라 집·옷·의료·교육이 모두 들어 있다.

2023~2025년 값은 통계청 KOSIS의 1세별 인구와 보건복지부 고시 기준 중위소득으로 우리가 이어 계산했다(2025년 가구원 수는 장래가구추계 기준의 잠정치다).
같은 방식으로 평균 가족이 한 달에 소모하는 에너지도 구할 수 있다. 1인당 평균 TEE에 가구원 수와 30일을 곱하면 된다. 1인당 TEE는 거의 그대로인데 가구원 수가 줄고 있으므로, 이 값은 해가 갈수록 줄어든다.

1원으로 살 수 있는 에너지
필요한 돈과 필요한 에너지를 모두 구했으니, 둘을 나누면 단위 에너지를 얻는 데 드는 최소한의 돈이 나온다.
이것이 좁은 의미의 시간에너지의 가격이다. 가격은 교환비율이므로, 여기서는 원화와 킬로칼로리의 교환비율을 뜻한다. 1킬로칼로리를 소모하기 위해 내주어야 하는 원화다. 통화량이 늘면 이 값도 당연히 오른다.

재미있는 것은 이 값의 역수다. kcal/원은 1원으로 살 수 있는 에너지, 다시 말해 원화의 구매력이다.

1원으로 살 수 있는 에너지는 계속 줄고 있다. 2000년 0.2878킬로칼로리에서 2025년 0.0970킬로칼로리로, 매년 평균 4.26%씩 감소했다. 다르게 말하면 이 기간의 인플레이션이 연 4.26%였다는 뜻이다. 원화의 가치가 꾸준히 하락해 온 이유는 앞 글에서 본 것과 같다. 우리나라 시간자산의 가치가 늘어난 속도보다 통화량이 늘어난 속도가 더 빨랐기 때문이다. 위 그래프의 점선은 현수선 추세선이다. 「가격」 편에서 원화 통화량(M2)의 추세를 현수선으로 두었는데, 구매력은 통화량의 역수이므로 같은 계열의 곡선으로 재는 것이 일관된다. 현 경제체제가 유지되는 한 이 하락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빅맥과 압구정 아파트를 에너지로 재면
이 환율을 쓰면 익숙한 것들의 가치를 화폐가 아닌 단위로 말할 수 있다.
맥도날드 빅맥 한 개의 열량은 약 580킬로칼로리다. 2022년 기준 교환비율이 약 8.5원/킬로칼로리이니, 이를 곱하면 약 4,930원이 된다. 실제 빅맥의 판매가격은 4,600원이다. 그러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 빅맥의 가치값은 580킬로칼로리이고 가격은 4,600원이다. 580킬로칼로리는 대한민국 평균 가족이 약 2.5시간을 생존할 수 있는 에너지다. 물론 이 교환비율에는 식량만이 아니라 최소한의 주거·옷·의료·교육이 모두 들어 있다.
조금 낯설게 들리겠지만 같은 방식으로 압구정 현대 아파트도 잴 수 있다. 가격이 50억 원이라면 가치값은 약 5억 9천만 킬로칼로리다. 이는 평균 가족이 약 300년을 생존할 수 있는 에너지다. 이 값이 적정한지는 잠시 접어 두자. 중요한 것은 모든 재화와 자산의 가치값을 가격과 다른 단위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 순간 우리는 화폐로 계산된 가격의 중독에서 한 발 물러설 수 있다.
이 시도의 한계
물론 이 기준도 완전하지 않다. 몇 가지를 분명히 해 두자.
첫째, 대한민국 국민의 생활 수준은 세계의 평균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이고, 70억 인구의 최저생계비는 우리의 것과 전혀 다르다. 이 단위는 어디까지나 '한국에 사는 우리'를 재는 자다.
둘째, 최저생계비 자체가 화폐 통계다. 화폐에서 벗어나려고 시작했는데 출발점의 절반이 여전히 화폐인 셈이다. 우리가 앞 글에서 시간(boum)을 기준으로 삼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간자산의 가치는 현금흐름의 누적으로 구할 수 있고, 그 값은 통화량의 증가와 거의 일치했다.
그럼에도 이 계산에는 의미가 있다. 에너지로 잰 원화의 구매력이 매년 4.26%씩 떨어진다는 결론은, 시간으로 잰 결론과 방향이 정확히 같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두 길이 같은 곳에 도착했다면, 그 결론은 조금 더 믿을 만하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가 이 지루한 계산을 하는 이유는 하나다. 가치를 화폐로 재는 습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가치를 정확히 구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투자자에게는 가격과 같은 물리량인 '가치값'을 늘 견주어야 하는 숙명이 있다. 가격의 오르내림은 자산의 가치가 변해서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화폐의 가치가 변했기 때문이다. 가치값을 가격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투자할 수 있다.
다음 글에서는 가치의 층위를 다룬다.